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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2013.05.12 15:34 from 현/잡문

‘여자’가 그렇게 앙칼진 목소리를 내면서 ‘남자’와 싸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집 앞 공사판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시각에 맞춰 생각해 보면 한 시간 이상 싸웠다, 그 둘.

 

“니가 나한테 뭘  ”니가 나를 어떻게 “나는 니가 그러는 게 ”니가 나 “니가 ”니“ 부분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드라마 작가에 빙의하면,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애초에 여기는 도심 한가운데의 오피스텔이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현관문에 끼어 있는 것은 모르는 사람의 휴대전화번호이다. 가슴과 엉덩이를 확대 툴로 문지른 아가씨들의 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이웃의 독일인은 금요일만 되면 여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제 방 안을 구른다. 그러니 상상해 볼 수 있다. 여기는 독일이 아니다. 대충, 그렇게 대충대충 여러 가지를 상상하며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예닐곱 번 정도? 둘은 싸우는 거다, 대충 : “니가!” 때문에.

 

 

2013.5.12.
5- 6시 경 시작, 7- 8시 경 종료.

 

2013.5.12.
15시 20분

 

그 목소리를 낸 게 ‘여자’ 인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상대방이 ‘남자’라는 것도 잘 모르겠다. 자다 깨다 하며 혼미한 상태로 들었기 때문에, 그건 그냥 신의 계시인지도 모른다. 모세 쯤 닮아보려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내리는 계시인데, 잠들면 더 기민해지는 내가 도둑 비슷하게 그 계시에 올라타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잠결에 올라탄 거야. 악의는 없었다. “니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그래 니가.

 

옛날의 나라면 “니가 나한테 뭘” 이라고 대꾸했겠지만 지금은 들어 넘겨 멍하니 잊어 버려 줄 수 있다. 잊어 버려 줄 수 있다고 해 놓고서, 기록하는 것은 뭔지. 앙칼지게 찔러온다. “니가!” 내려온다. 이번의 계시는 내 것이다.

 

 

 

 

사족 : 나는 2인칭을 ‘니’ 라고 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니가~ ’ 어쩌구 하는 노래를 길가다 우연히 듣기라도 하면. 찾아가서 꺼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이건 그냥 잠투정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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